쉽지 않지만 깊게 스며드는 문장들 – 한강 작가와의 조용한 재회

나라배움터에서 다시 만난 한강 – 《작별하지 않는다》, 《흰》 그리고 《희랍어 시간》

전자책 '희랍어 시간'

 

몇 해 전, 나는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사실, 나는 공포, 스릴러,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는 아예 보지 않는다.
넷플릭스도 해피엔딩이 아닐 것 같거나, 예고편에서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채식주의자》를 읽었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잔상은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한강 작가가 세계적인 상을 받고, 서점가를 휩쓸었을 때에도
쉽사리 다른 작품을 집어 들 수 없었다.
모든 서점에서 그녀의 책이 품절이던 그 시기, 나도 한 번은 클릭해보다가 결국 페이지를 닫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베트남 호치민에서 출장 중이던 요즘, 문득 나라배움터 전자도서관에서 전자책을 찾다가 한강 작가의 작품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거의 우연이자, 운명이었다.
몇 년이 지나서인지, 고민도 없이 손이 가서 바로 《작별하지 않는다》를 대출했다.

 

읽기 시작한 건 목요일 오후쯤.
금요일 하루 종일 집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밤이 되어서야 다 읽었다.
그리고 바로 《흰》을 또 읽었다.
이 책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시적이고, 몽환적이었다.
읽고 나니, 한강 작가가 단순히 스토리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언어로 감각을 직조하는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카페에 앉아 《희랍어 시간》까지 다 읽었다.
세 권을 연달아 읽으면서, 마음속 어딘가에 맺혀 있던 감정이 천천히 해소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슬픔이나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꼭 부정적인 건 아니라는 걸,
그 감정들 속에도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이 작가의 글에서 다시 느꼈다.

 

한강 작가의 책은 쉽지 않다. 어렵다.
다만 그가 얼마나 이 문장을 고심해서 썼을지,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그 고민의 깊이가 느껴진다.
문학 작품이어서 그런지, 정말 오랜만에 국어사전도 찾아보게 됐다.
‘살풍경하다’는 단어처럼, 낯설지만 정확히 감정을 짚어주는 표현들 덕분에 나의 어휘력도 되짚게 된다.

 

한강 작가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그려낸다.
하지만 사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이기도 하다.
그동안 우리가 그 면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글이 더 깊은 슬픔과 외로움으로 다가오는 건 아닐까 싶다.
그 감정을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작가, 그래서 그녀의 글은 오래 남는다.

전자책 '흰', '작별하지 않는다'

 

나라배움터 전자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면
간단한 후기(200자~500자 정도)만 남겨도 교육시간으로 인정(200분..정도)된다는 사실이다.
공무원으로서 독서하면서 교육도 동시에 이수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책을 읽고 느낀 감정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것이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는 것에 큰 만족감을 느낀다.

 

한강 작가의 책은 나에게 여전히 쉽지 않은 작품이다.
하지만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다고 느꼈을 때, 그 작품들이 또 다른 깊이를 선사해 주는 것 같다.
다음엔 《소년이 온다》를 읽을까, 아직은 조금 망설여지지만.
나라배움터에는 그 외에도 좋은 책이 많으니, 조만간 또 하나 꺼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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